분홍빛 바다 백일천자 23 1112자 바다의 색은 다 다르다. 여러 해안가를 가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말 그대로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은 검푸른 바다가 있는 반면에, 옅고 투명한 비취색 바다도 있다. 청록색 바다도 있는 반면에 푸를 청자의 고향같은 푸른 바다도 있다. 밑에 깔린 모래와 바위의 색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겠지만, 우리는 상상을 할 수 있다. ...
하루가 되기 전, 하루 백일천자 22 1107자 음식에 대한 흥미가 옅어지고, 감정의 절제가 쉬워질수록 소연씨는 친구들을 만나러 가지 않게 되었다.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는 말에 동하지 않게 되었고, 영화를 보고도 친구들과 공유하고 싶은 감정은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공부도 해야 했고, 운동도 해야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하고 외국어 공부를...
돼지 백일천자 21 1014자 가정에 위 아래가 없어! 시발! 이 새끼들이 다 입 닥쳐! 이게 마지막 경고야, 시발! 집에 들어와서 이 난리다. 동생이랑 싸웠나보다. 동생은 컴퓨터 앞에 앉아버렸고, 엄마는 밥을 먹다 말고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버리셨다. 두 시간 동안 서서 열심히 만드신 음식인데, 주말에 오랜만에 온 가족이 같이 먹는다고 애써 요리하신 음식인...
언제까지나, 친구 백일천자 20 1149자 내 속은 하얀 솜으로 채워져있어요.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따뜻하게 해줄 수 있고, 폭신하게 기분 좋은 느낌을 줄 수도 있어요. 슬픈 일이 생기면 내가 모든 슬픔을 빨아들여 줄 수 있어요. 내게 얼굴을 묻고 실컷 울어도 미끌거리거나 하지 않아요. 그저 조금 축축해졌을 뿐, 여전히 폭신하고 안으면 따뜻하답니다. ...
하루가 오기 전, 음식에 대해 백일천자 19 1105자 갓 성인이 되었을 때, 소연씨는 음식을 먹으며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드라마를 보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두 시간, 많아야 네 시간 분량의 영화는 너무 짧았다. 이미 좋아하게 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고, 오랜 시간 동안 즐기고 싶어했다. 방학 때는 하루 종일...
하루가 오기 전, 어른에 대해 백일천자 18 1081자 어른이 된 소연씨는 감정 표현을 성숙하게 할 줄 알게 되었다. 눈물이 멎은 것부터부터 얻은 좋은 점이었다. 마구 웃음이 나오는 순간에, 침을 삼키면 웃음도 사그라들어, 조그만 미소로 끝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더 이상 친구가 웃긴 농담을 했다고 길거리에서 배꼽을 잡고 쓰러지지 않아도 되었단 거다. ...
하루가 오기 전, 눈물에 대해 백일천자 17 1376자 소연씨는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다. 중학교 때, 점심시간에 영화를 보던 친구가 엉엉 울며 찾아오자 영문도 모른 채 같이 울어버린 적도 있었고, 바람에 쓰레기 봉지가 휘날려가는 것을 보고 울기도 했었다. 마음이 힘들거나, 몸이 지칠 때면 자신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눈물을 철철 흘리는 중이었다. 눈...
서른 다섯, 열 다섯 백일천자 16 1106자 뭔가 기분이 좋은 꿈을 꿨던 것 같다.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라서 기분이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세수도 하기 싫고, 양치도 하기 싫었다. 부모님은 출근하셨고, 부엌에는 아침이 차려져 있었지만 지금은 먹기 싫었다. 대충 외투를 걸치고,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늦은 오전의 햇살이 따스해서 기분이 좋았...
열 다섯, 서른 다섯 백일천자 15 1086자 안녕? 오랜만이야. 아니- 이렇게 말을 걸어 본 건 처음이지? 맞아, 나는 20년 뒤의 너야. 생각해보니까 나는 늘 네게 편지를 받기만 했더라고. 그래서 나도 한 번 써 보려고 해. 나는 재밌게 살고 있어. 네 덕에 늘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지. 아이돌이나 배우와의 짜릿한 비밀 연애 같은 건 한 적 없지만, ...
밤 백일천자 14 1173자 풀벌레 소리가 부드럽게 귓가를 감싸는 밤이었다. 열린 조그만 창 틈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봄에는 저 쪽에 떠 있던 별이 조금씩 조금씩 움직여, 내 머리 위에 떠 있던 그런 날. 문득 머리부터 발끝까지 충족감으로 물드는 것을 느꼈다. 아니, 사실 발끝에서부터 심장 바로 아래까지만 만족스러웠다. 심장부터 머리끝까지 ...
마라탕, 초콜릿 케이크, 청포도 타르트 백일천자 13 1578자 우리는 평소처럼 신나게 마라탕을 먹었고, 또 얼얼한 혀를 식히기 위해서 카페에 와 초콜릿과 과자를 잔뜩 얹은 케이크와, 건강을 위한 청포도 타르트를 하나씩 시켰다. 달콤한 걸 먹으니 씁쓸한 것을 먹어줘야 한다며 그 애는 차가운 아메리카노, 나는 뜨거운 홍차를 시켰다. 우리 옆자리에는 아마 조퇴...
요정 어른 백일천자 12 1552 왜, 어른이 되면 요정들이 사라질까? 어른이 되기 때문에 요정들과 함께 놀 수 없다면 난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을 거야. 라고 생각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는 이제 자신의 생계를 직접 책임지고, 타인의 생계를 가늠해보는 어른이 되어있었다. 그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와 함께했던 요정 또한 어른이 되어있었다. 그는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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