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백일천자 47 1116자 무에서 태어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일이든 간에 시작점이 존재한다. 다만 우리가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불교같다. 인과 연으로 이루어졌다는 한국 불교는 과학적으로도 진리가 된 거다. 우리의 행동도 생각도 전부 과거의 어떤 일, 상황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니 말이다.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도 과거의 어떤...
XY . 수학여행 - X 백일천자 46 1090 X가 Y에게 처음으로 입을 맞춘 때는 사귀고 나서도 아니고, 사귀기 이전도 아니고, 뭔가, 애매모호한 기운이 둘 사이에 감돌고 있을 때였다. 애석하게도 로맨틱한 분위기도, 설레는 순간도 아닌 게임의 벌칙이었지만,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났어도 Y의 얼굴은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을 것이다. 중학교 2학년,...
어른, 노력 백일천자 45 1071자 매일 매일 걷는 길에서 특별함을 느끼기에는 너무나 많은 체력이 소모된다. 하지만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풍경에, 바람, 그리고 별로 변하지 않는 옷차림이지만 오늘도 새롭게 이 길을 걸었을 누군가를 생각하면 그래도 특별해진다. 내가 그림으로 밥을 벌어먹는 것은 아니다. 글로 벌어먹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
삶-U 백일천자 44 1181자 어떻게 살아야겠다고 결정한 날이 있었다. 일고여덟 살 때 즈음,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의 전망대에 올라간 밤이었다. 화려하고 빛나는 불빛과 학교에서 배웠던 헐벗고 다니는 내 나이 정도의 사람들은 나를 괴롭게 했고, 나는 세상을 바꾸기로 마음을 먹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하다 보면 언젠가 세상이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삶-Q 백일천자 44 1141자 아침에 일어나서 물 한 잔을 마시고, 세수양치를 하고 스킨을 바른다. 옷을 갈아입고 향수를 고르고, 패드의 충전을 확인한다.블루투스 이어폰과 헤드셋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헤드셋을 가방에 담는다. 그리고 나와서 출근한다. 지하철에서 운 좋게 앉아서 갈 때면 가방 속에서 패드를 꺼내서 영화를 본다. 한 십 년 전부터는 자막도 끄고...
삶-C 백일천자 43 1243자 이 나이가 먹도록 아무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렇다. 이 세계에는 마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믿는 순간이 내 주위의 마법이 의도한 대로 넘어간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럼 난 다시 도깨비와, 여러 신령한 존재들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다. 유럽에 살았다면 정령들과 요정들, 그리고 내가...
삶 - W 백일천자 42 1147 나는 좀 바보같다. 나도 내가 바보같은 걸 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남에게 잘 이야기하지 않으려 한다. 세상에는 현명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요정과 마법사, 다른 차원을 믿진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 내 인생이 영화같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같은 만남 속에서, 영화같은 사랑을 하고,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은 극적인 마무리로 ...
삶-R 백일천자 41 1015자 삶은 진주알처럼 작은 행복들이 연결된 것이라 했다. 루시모드 몽고메리가 빨간 머리 앤에서 한 말이다. 그리고 그 삶은 건강한 삶이다. 좋아하는 것들이 많고, 여러 군데에서 행복을 얻을수록 존재는 더욱 단단해지고 현재에 충실하게 된다. 나는 현실에 충실한 삶을 좋아한다. 미래를 꿈꾸는 삶도 좋아한다. 그 균형 어디메에서 살아야...
별의 탄생 백일천자 40 1209자 XX년 B월 N일. 시골짝 작은 산부인과에서, 3은 태어났다. 3은 태어날 때부터 기백이 뛰어났다. 유독 큰 목소리 덕에 그 병원 사람들과, 아기들은 그 날 밤을 설쳐야 했다. 3은 동그란 코를 가졌고, 큰 입을 가졌다. 큰 입이 큰 목소리의 근원인 것인지, 입을 자꾸자꾸 크게 벌려 소리를 내는 바람에 어머니는 3의 입을...
비밀스러운 미술관 행차 백일천자 39 1161자 노란 구두에, 긴 남색 치마에, 하얀 가디건까지 입은 나는 꽤나 근사하다. 오늘이 무슨 날이어서 이렇게 차려입은 것은 아니다. 그냥 어제와 똑같은 날일 뿐이다. 다만 내가 어제와 같은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은 거다. 사실 목적지가 정해진 것은 아니다. 30분 정도 걸으면 공원이 나오고, 반대편으로 15분쯤 걸...
X에 대하여(3) - Y 백일천자 38 1239 X는 옛날부터 조그만 걸 좋아했다. 정확히는 자신보다 조그맣다는 사실에 겁을 먹어 어쩔 줄을 몰라한다. 유치원 때도 나하고는 엄청 싸웠지만 자기보다 어리거나, 키가 작은 애들은 뭔 짓을 해도 건드리진 못했다. 소리도 지르고 짜증도 냈지만, 때리지는 않았단 거다. 그 당시 나는, 늘 혼자 있던 X가 신경이 쓰여...
U N I 백일천자 36 1131자 따스하고 포근하다. 그의 숨결이 내 머리끝에 닿아 부서지는 게 느껴진다. 부드러운 가슴팍에 기대 귀를 기울이면 쿵쿵 뛰는 그의 맥박을 들을 수 있다. 그의 품 속에 안겨있으면 세상 그 어떤 것이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같은 기분이 든다. 수북한 깃털에 폭 감싸진 느낌은 아무하고도 절대 공유하고 싶지 않다. 난 처음에 그가 ...
눈을 감고 세상을 보다. 무지한 무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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