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353637 백일천자 35 1098자 비가 오는데 젖는다는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우산도 없이 뭔가 가려줄만한 것도 없이 걷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축축한 물이 옷에 스며든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다만, 시릴듯이 차가운 공기가 내 겉껍질부터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차가운 공기는 언제든지 환영이다. 여름날보다는 겨울이 훨씬 낫다. ...
Y에 대하여(3)- X 백일천자 34 1228 Y는 나를 좋아한다. 너무 쉽다. 옛날부터 나를 너무 좋아했다. 하지만 이 걸 안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난 그때까지 Y한테 설렐 때마다 친구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 자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전부 Y의 의도된 행동이었다는 걸 알고 받은 충격은,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가 너무 어렵다. 좋아하는 사람이 날 좋...
용기의 하루 백일천자 33 1787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무기력함에서 몸을 잡아 끌어 일어나는 것은 꽤 많은, 아니 사실 아주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나는 평생을 누워있기를 좋아하고, 사람을 만나기를 싫어하며, 홀로 잠이나 자는 것을 좋아하는 게으름뱅이이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다. 그래서 아무런 득이 없는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있기를 잘 하며, 가끔가...
X에 대하여(2) - Y 백일천자 32 1057자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내 옆자리 부분을 더듬어본다. 따뜻하고 커다란 게 닿는다면 그건 X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옆자리에 기어들어온 거다. 그리고 그 날은 악몽을 꿨거나, 뭔가 기분이 나쁜 일이 있었단 거다. 초등학교 3학년 언저리였나. 하도 서로의 집을 오고가며 자는 바람에 각자의 집에 서로의 잠...
수산시장에서 백일천자 31 1088자 손끝이 베인 것도 몸이 반으로 포가 뜨인 것도, 숨이 끊어지지 않는 그 순간까지는 살아있다. 나는 내가 뿌렸던 수많은 씨앗과 내가 먹었던 작은 고기들을 생각한다. 먹히면서까지도 날개를 퍼덕이던, 퍼덕이던 탓에 뜯겨나간 살점들이 바다로 흩뿌려지는 것도 모르고 어떻게든 퍼덕이던 그 지느러미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 ...
우주의 낭만주의자 백일천자 30 1136자 우리는 소량의 빛과 소량의 어둠, 그리고 암흑물질이 적절한 비율로 섞여 만들어진 존재다. 과학은 생명체의 존재에 대한 비밀을 탐구하고 답을 알아냈지만 이를 활용해 돌멩이에게 생명을 불어넣지 못하고, 죽은 자를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영혼의 존재를 파악하지도 못하고 있다. 어떤 생각을 할 때 뇌의 어떤 곳이 ...
Y에 대하여 (2) - X 백일천자 29 1287자 Y는 작다. 그리고 귀엽다. 솔직히 어휘 능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을 안다. 내가 따로 공부를 많이 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그런 건 어쩔 수 없이 인정한다. 하지만 그 애를 보면 똑같은 말을 하게 될 것이다.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말을 꺼내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을 것이다. 물론 사랑스럽지 않은 점도 있...
X에 대하여 - Y 백일천자 28 1378자 좋아한다. 같이 등교하고, 같이 되돌아오는 그 길을 사랑한다. 굳이 더 좋은 학교에 가지 않았던 이유를 알까, 그 애가 제대로 운동할 수 있는 학교로, 내가 따라왔다는 것을 알까? 모르겠다. 몰라도 상관없다. 그냥 옆에 있을 수 있다면 된 거다. 나는 그 애의 손길을 좋아한다. 부드럽지도 않은, 딱딱한 농구공을 ...
Y에 대하여 - X 백일천자 27 1035자 결이 좋은 옅은 노란색 머리카락, 햇빛을 받을 때마다 마치 금실을 매달아놓은 것 마냥 반짝이는 머리카락. 정수리를 타고 곱고 하얀 이마 정중앙으로 내려온 가르마와 그 갈래를 따라 양 옆으로 파도처럼 나뉘어진 곧은 머리카락은 세심하게 다듬은 눈썹 언저리에서 흔들거렸다. 한 입 먹은 푸딩같은 아이홀 속에는 얇아진 살...
고양이 백일천자 26 1172 배 속에서 소용돌이가 요동쳤다. 속 안이 세탁기 속 통돌이가 된 것 같았다. 뭐든 뱉어내고 싶은데 습기 섞인 공기 빼고는 아무것도 뱉을 것이 없다. 속은 뱅글뱅글 돌아가는데 머릿 속은 오히려 잠잠하고 가슴은 답답하니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삶은 수만 가지 가닥으로 뻗어있고 매 순간마다 선택을 해야하지만 무엇을 결정...
달무리 백일천자 25 1287자 날이 무섭게도 시린 어느 겨울날 밤,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P는 하늘을 보았다. 구름이 꽁꽁 얼어있었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얼음 조각들이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그의 가죽 자켓도 달빛을 받아 광을 냈다. 구름 속의 물방울이 얼어 빛을 굴절 시킨 것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달과 밤하늘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
은행잎 여행 백일천자 24 1130자 은행잎을 타고 여행을 가요. 바람을 타고 아주 아주 멀리 멀리 여행을 떠나요. 오늘은 일요일, 나는 가방에 과자 한 봉지, 차가운 물 하나,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넣었어요. 모자가 달린 노란색 외투를 입고 하얀 털방울이 달린 빨간 부츠를 신었어요. 나는 여행을 떠날 거에요. 엄마 아빠를 꼭 껴안아요. 긴 여행을 떠나기 ...
눈을 감고 세상을 보다. 무지한 무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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