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욕망 백일천자 59 1217자 오후의 차 한 잔은 안락함을 줘요. 그리고 이 향긋한 차와 함께 그대를 마주볼 수 있는 것은 내게 있어서 더 없이 큰 행복이네요. 곱슬거리고 윤기가 도는 아름다운 금발에, 바다를 닮은 파란 눈과 영양있는 토양의 붉은빛 피부를 가진 남작이 말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모를 가졌다고 소문이 자자한 남작은 혀도 설...
연어가 되고 싶은 백일천자 58 1095자 물살을 가르고 헤쳐나가는 연어들은 얼마나 대단한가. 흐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멋진 사람들인가. 쏟아지는 폭포를 마주하고 흘러내려가지 않는 사람들, 설령 폭포수 아래에 떨어진다고 해도 다시 그 거센 흐름을 거슬러 어떻게든 올라가는 사람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 숨을 옥죄는 듯한 감정...
자신 M 백일천자 57 1379자 M은 자신을 잃지 않는 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자신이 무엇을 하면서 살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할 때 심장이 뛰고, 기운이 나는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M은 이것 저것 시도하기로 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기로 했다.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숨이 막혀올 때,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
사고 - X(3) 백일천자 56 1358자 Y는 휘청휘청거리면서 달려갔고, 나는 정신없이 Y의 뒤를 따라 달려갔다. 손을 조금만 뻗으면 그에게 닿을 수 있었지만 지금 내가 그를 멈춰세우면 일이 더 커질 것 같아서, 멈춰세우지를 못했다. 그저 Y의 한 두 발자국 뒤에서 함께 달리기만 했다. 그게 잘못이었다. Y의 정신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Y를 멈춰...
사고 - X (2) 백일천자 55 1050자 Y는 결국 화를 냈다. 그래, 내가 전 날 고백 받아 놓고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것과, 몸에 안 좋은 걸 사먹은 것과, 부담스러워하는 걸 알면서도 온종일 계속 보고만 있었단 것만으로도 이렇게 화를 내진 않았을 것이다. Y와 친구가 된 이래, Y가 이렇게까지 화를 낸 건 처음이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도 ...
사고 - X (1) 백일천자 54 1200자 내가 잘못했다. 내가 짜증을 냈고, Y가 하지 말라는 모든 것을 했다. 다른 애랑 눈이 맞은 건 아니다. 다만 거절을 너무 매몰차게 하기도 했고, 아님 거절을 못하기도 했다. 매몰차게 굴면 너무 나쁘게 굴지 말라고 화를 내고, 그렇다고 매몰차게 굴지 않으면 거절을 왜 못하냐고 화를 낸다. 내가 자기뿐이라는 걸 알...
사고 이주일 후 - Y 백일천자 53 1060자 X의 몸 상태는 날로 좋아져갔다. 아직까지 눈을 못 뜰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X는 여전히 눈을 뜨지 못했다. 머리 쪽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X는 눈을 뜨지 못했다. X의 부모님은 Y를 X의 병실로 들어오도록 했다. Y는 X의 다리를 보고 눈물을 참지 못했고, 그 날로 매일 X의...
사고 일주일 후 - Y 백일천자 52 1459 내 잘못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전부 내 잘못이다. 순간 차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그의 손을 뿌리치고,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차도인지 인도인지 구분도 못하는 채로 달려나간 나의 죄다. 이제 우리가 왜 싸웠는지, 내가 왜 그 때 화가 났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니, 아무 상관이 없다. Y는 덜...
검고 붉은 백일천자 51 1345 흑단 같은 머리카락에, 조금은 붉은 빛이 도는 검은 피부, 옅은 갈색 눈동자. 길거리에서 그를 스쳐지나간 사람들은 그를 정열적이라고 판단하리라 확신한다. 실제로도 조금 불 같은 면이 없지 않아 있긴 하지만, 사람의 면면 중에 불과 비슷한 면이 없는 사람은 없잖은가. 그의 목소리는 높고 굵다. 그의 성대에서 시작된 파동이 공...
하얗고 푸른 백일천자 50 1264자 창백하고 하얀 피부에 파란 유리 구슬같은 눈은 그를 마치 마네킹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수족냉증을 앓고 있는 탓에 그의 손끝과 발끝은 언제나 차다. 가끔 내 피부 위로 길고 가는 손가락을 뻗어오면 흠칫 몸을 떨게 될 때도 있다. 이마는 평평하지만 정수리부터 뒤통수는 거의 완전한 원형을 이루고 있다. 아름다운 두개골 덕인지...
나 백일천자 49 1180자 부드러운 실크 치마가 내 발폭을 스치면서 나풀나풀거렸다. 레이스 끝자락이 내 종아리를 간지럽힌다. 내 새끼발가락은 에나멜 구두에 눌려 숨도 못 쉬고 있다. 두피까지 잡아당겨 고정한 머리카락 덕에 이제 슬슬 두통까지 밀려온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나는 웃어야 한다. 다 힘들 거다. 왁스를 치덕치덕 바른 턱에 안 그래도 좀 벗겨진 ...
하루치 칭찬 백일천자 48 1048자 아무것도 안 하면서도 칭찬받고 싶다. 아무런 것 없이도 소중하다는 걸 느끼고 살았으면 좋겠다. 사람은 사람이란 이유만으로도 소중하다는 것을 머릿속으로는 아닌데 마음 속으로 아는 건 어렵다. 자기 자신을 단단하게 지켜낸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 느끼지는 못해도, 머릿속으로라도 계속 외치고 있는 나는 대...
눈을 감고 세상을 보다. 무지한 무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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