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에 대하여 백일천자 11 1313자 짙은 붉은 빛 머리에, 초록빛 눈동자를 지닌 그의 이름은 성의이다. 오늘이면 나는 그와 세 번째 만남을 갖는다. 그는 먹는 것을 매우 좋아하지만, 느끼한 음식은 싫어한다. 특히 버터와 마가린, 기름이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진심으로 얼굴을 찌푸린다.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학교 근처의 카페에서 보았다. 나는 뜨거...
학교 가기 전날 밤에 백일천자 10 1443자 이불 밖으로 내놓은 발가락이 간질거려요. 간지럼 요정은 점점 위로 올라와서 속눈썹도 간질여요. 나는 간지럼이 싫어서 이불 속에 쏘옥 들어가지요. 하지만 어느새 나한테 딱 붙은 간지럼 요정은 가슴을 마구 마구 간질여요. 나는 간지럼 요정이 왜 찾아오는지 알아요. 내일이 바로 내가 처음으로 학교에 가는 날이기 때문...
내가 좋아하는 것 -T 백일천자 9 1118자 나는 좋아하는 게 하나도 없다. 아무것도 안 좋아한다. 갓 구운 고기는 맛있지만 좋아하지는 않는다. 사과와 바나나도 있으면 먹지만 좋아하지는 않는다. 난 아빠도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하지 않을 뿐이다. 엄마는 애초에 있지조차 않았다.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들은 그냥 싫다. 노래를 듣는 것도 좋아하지 않...
내가 좋아하는 것 백일천자 8 1244자 나는 치즈케이크를 좋아한다. 밀도가 아주 높은, 입 안을 텁텁하게 만들 정도로의 진한 치즈케이크를 좋아한다. 치즈케이크와 함께 먹는 뜨거운 커피도 좋아한다. 시럽을 넣지 않은 라떼나 아메리카노를 곁들인 치즈케이크는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갈 즈음...
운명에 대하여 - 9에게 백일천자 7 1044자 '결국, 또 다시'란 단어는 삶에 운명이란 것을 끼얹게 만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운명이란 것이 존재하나? 뜨끈한 물이 가득 담긴 욕조에 초록색 입욕제를 풀며 9가 생각했다. 초록색 물이라니, 딱히 그의 취향은 아니었지만 욕조 위에 둥둥 띄울 흰 모형 백합과 함께라면 꽤 운치있는 광경이 된다. 9는 백합...
운명에 대하여 - 3에게 백일천자 1093자 '결국, 또 다시'란 단어는 삶에 운명이란 것을 끼얹게 만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운명이란 것이 존재하나? 책장 위에 쌓인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3이 든 생각이었다. 3은 일주일에, 두세 번 찾아오는 어린 애독가 빼고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공립 도서관의 사서였다. 뭐, 공립 도서관은 일주일에, 아니 한 달에...
거미줄 백일천자 5 1055자 하룻밤 사이 거미가 거미줄을 잔뜩 쳐놓았다. 다행인 것은 집 안에 들어온 커다란 귀뚜라미와, 어제 밤 사이 들어온 온갖 날벌레들을 다 잡아놓은 것이고, 불행인 것은 U가 이제부터 저 거미줄을 치워야 한다는 거였다. U는 한숨을 내쉬고 휴지를 손에 감아 재빨리 거미줄과 벌레들의 사체들을 한꺼번에 치워버렸다. U는 벌레들을 싫어하...
여름날, 상상 백일천자 4. 1061자 풀벌레 소리가 윙윙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창문 사이로 밀려오는 바람은 마치 내가 폭신한 들판 위에 누워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따스한 햇살까지 맨살을 간질였고, 나는 발가락부터 차오르는 행복감에 젖어있었다. 눈을 떠서 속눈썹 사이로 비치는 햇빛과, 공기 중 떠다니는 작은 먼지들이 빛에 닿아 반짝이는-이럴 때만 아름...
괜찮은 백일천자. 3 1042자 아니. 어쩜 그래요? 믿을 수가 없어. 너무 황당하지 않아요? 지금이라도 잘 된 거야. 차라리 이게 나아. 여기까지였던 거야. 그 사람과는. 그리고 관계는 굳이 질질 끌 필요가 없는 걸. 관계를 질질 끌 필요가 없다고 해요. 그래도 예의는 지켰어야죠. 어떻게 그래요. 사람이. 그건 그쪽이 무례했던 게 맞지만, 그래도 그 사람...
곰의 겨울잠 백일천자. 2 1254자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요리하기를 좋아하는 곰이 한 마리 있었어요. 숲 속 깊은 곳, 물이 퐁퐁 솟는 옹달샘 옆에 집을 짓고 살고 있었지요. 곰은 매일 매일 요리했어요. 어느 날은 산딸기를 잔뜩 따다가 청을 만들기도 하고, 녹두를 빻아서 송편을 만들기도 했지요. 그리고 늘 친구인 참새와 호랑이에게 나누어주었어요....
헝겊과 가치. 백일천자 1. 1038자 난생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비행기를 탄 것은. 나를 매만지던 손길이 아직도 기억에 난다. 손에 나를 꼭 쥐고 창밖을 바라보는, 내 친구. 동이 틀 때면 손에 나를 올리고는 동그랗고 작은 창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던 내 친구. 그의 쿵쿵 뛰는 심장박동은 얇디 얇은 살가죽을 타고 내게로 전해져왔다...
예림이와 착한 아이 공장 “으악!” 현관문을 연 엄마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나왔습니다. “아이고!” 잇따라 들어온 아빠의 입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나왔습니다. “현예림!” 엄마가 외쳤습니다. 신발에 흙이 묻지 않게 조심조심 내려놓으면서요. “이 꼴을 봐! 현관 바닥이 온통 흙으로 뒤덮여있잖아!” 예림이는 슬금슬금 부모님의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세상에, 이 말...
눈을 감고 세상을 보다. 무지한 무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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