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

MUJI 연재 /11화

그래, 나. 살아있네. 살아있나 봐. 무지몽매한 무지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아무것도 살지 않는 그 무지 속에서. 내가, 살아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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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의 포스트

1화부터 최신순

두려움 -산다는 것은 비대해진 자아를 줄여가는 과정에 그치지 않는다. 두렵고, 무섭다. 눈물을 참는 것에는 익숙해졌다. 아니, 나는 뜨겁게 치미는 눈물을 단숨에 차갑게 가라앉히는 데에 능숙해진 거다. 현실의 매서움이 나 하나를 가볍게 먹어치우도록 내버려 두는 것. 그 와중에 오기는 있어서, 차가운 이빨에 되도록이면 닿지 않게끔, 부드럽게 그의 목구멍으로 넘...

MUJI

7 2020.03.17

무지

봄봄봄

용기

열 여덟의 봄, 열 아홉의 봄. 스무 살의 봄. 서른 다섯, 마흔 아홉, 쉰 둘의 봄. 숫자가 늘어감에 따라 단어가 주는 특별함은 점점 사라져간다. 봄의 새로움이 갈수록 덜해지는 건지, 아니면 봄의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들이 줄어드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낡고 닳아빠진 현실에 잠겨 봄이 주는 울림을 서서히 잊게 되는 것 같다. 세금도, 나날이 오르는 집값도...

MUJI

16 1 2020.03.17

무지

여자와 화장과 쇠사슬

자유의 상징, 그리고 보라색 토끼 머리핀

여자와 화장과 쇠사슬 -자유의 상징, 그리고 보라색 토끼 머리핀 화장을 하는 것이 잘못일까? 남자들이 화장을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라고 외치고 여자들이 화장을 하는 것은 왜 꾸밈노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그 자체로 여성이 여성을 혐오하는 일이라고 눈칫밥을 줄까? 화려한 화장을 하는 여자 아이돌들이 여성 혐오를 조장한다고 하며 그 말과는 모순되게도 여성이 그...

페미니즘 에세이

MUJI

27 2020.01.08

무지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모든 인과관계가 자신으로 이루어졌단,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인간의 착각

8.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어쩌다보니 드린 미사. 내 탓이라는 말이 모든 이의 입에서 울려퍼진다. 예수의 죽음뿐 아니라, 현재의 모든 문제가 모두 자기 탓이라는 고백은 스테인드 글라스의 이질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다.눈물을 쥐어짜내는 한국영화 속 고전적인 프레임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일이 이 지경...

수필

MUJI

67 2019.04.13

무지

태풍과 사람

내게는 너무 버거운 일이므로.

7. 태풍과 사람 비가 오고 바람의 부는 날의 사람은 네 종류로 나뉜다. 첫째, 비와 함께 흘러내리는 이. 둘째, 비를 맞아 고개를 숙이는 이, 셋째, 하늘을 바라보는 이, 넷째, 이 모든 것에 속하지 않는 이. 나는 어떤 종류의 사람일까. 첫째, 나는 비와 함께 흘러내린다. 구름은 자신의 모든 것을 쏟는다. 비는 구름의 모든 것, 나는 비에 나를 섞는다....

창작 수필

MUJI

67 2 2018.11.29

무지

응급실의 딜레마

우리 사회는 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6. 응급실의 딜레마 응급실의 의사가 쓴 에세이를 읽는다. 눈조차 붙이지 못 한 채고 30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우리나라가 골을 넣은 순간에도 기뻐할 새 없이 다른 이의 사망 선고를 내린다. 유족들의 원망을 들음과 동시에 뛰지 않는 다른 이의 심장을 뛰게 하기 위해 달음박질 한다. 방금 차에 치여 눈이 뒤집힌 채로 도착한 이의 얼굴과 기차에 깔려 단면이 완...

수필

MUJI

186 4 3 2018.11.24

무지

허상

차도 위에서

5. 허상 멀리서 차도를 바라볼 때에는 밀려오는 차들의 불빛만 보인다. 아름답고 일렁이는 불빛에 심장이 두근거린다. 몰려오는 불빛들은 우리가 만들어 낸 놀라운 발전과 미래-. 과거와 현재가 합쳐져 미래를 향해가는- 그런 환상이 덮인다. 내게로, 조금 더 가까이. 차도에 바짝붙어 다가오는 차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허상에 빠져 허우적댄다. 차들이 내 앞을 ...

수필

MUJI

88 2018.10.28

무지

부끄러움

존재의 부정

4. 부끄러움 나의 존재를 부정한다. 내가 가장 무력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글쓰기는 성인이 된 이후에나 해라.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마라. 내가 글자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 십수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항상 들은, 듣고 있는 말들이다. 그런 말들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 뿐이었다. 나는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말로 그들를 안심...

공백 수필 창작

MUJI

106 2018.10.23

무지

사랑과 자유

무색무취의 흔적만이 남아

3. 사랑과 자유 사랑을 잘라낸다. 사람을 잘라낸다. 잊을 수 없기에 잊는 이 감정은 참으로 아프다. 하지만, 괴로움은 딱 당신을 잊기 전까지의 일이다. 감정의 망각은 고통의 종결과 같다. 더 이상 아프지 않고, 더 이상 슬프지 않다. 그 감정이 자리잡고 있던 가슴 한 복판에는 무색무취의 흔적만이 남는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못하고 아무런 맛도 나지 않는다....

에세이 수필 창작

MUJI

169 2018.10.21

무지

헤어보다

당신이 참으로 야속한 밤이다.

2. '헤어보다'라는 것. 헤어보다. 헤다. 세다의 강원도 방언이다. 헤다라는 단어는 참 많이 접할 수 있다. 별을 헤다. 당신을 헤다. 나를 헤다. 여기서 쓰이는 헤다는 헤아리다[짐작하여 가늠하거나 미루어 생각하다.(국어사전)]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 사실을 멀리 내쫓아버리기로 했다. 아무렴 어떤가. 당신을 가늠하는 것, 생각하는 ...

수필

MUJI

126 2018.10.12

무지

숨

그래, 아무도 모르는 세상에서.

1. 숨 아무도 모르는 세상에 앉아 가만히 숨을 쉰다. 내가 담아낼 수 있는 것은 한 줌의 눈물과 한 줌의 웃음과 한 줌의 사랑이 섞인, 이상하리만치 슬프고 아름다운, 하루이다. 아무 뜻도 없이, 아무 의미도 없이, 단지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성립되는 나의 매일. 당신을 바라보는 내일에는 무엇이 살까. 당신이 있을까. 혹, 당신을 기다리는 나만이 이렇게, ...

수필

MUJI

60 2018.10.08

MUJI

눈을 감고 세상을 보다. 무지한 무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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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산다는 것은 비대해진 자아를 줄여가는 과정에 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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